우리가 비엔날레를 말할 때 너무 많이 한 말과 하지 못한 말

서정임 경향<아티클>수석기자

오늘날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대형 미술 이벤트들은 매번 어떤 담론 또는 이슈를 생산하거나 동시대 미술의 향방과 미래의 좌표를 물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비엔날레의 목표 의식(또는 이상향, 정치학 등등)은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고 그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비엔날레들은 국가나 시의 도시화 전략으로, 자국 또는 지역의 예술가를 프로모션하거나 유명한 예술가를 초청하기 위해, 전지구적 자본주의 상황에 따른 국가나 시의 문화 행정을 위한 도구로 취해지거나 미술의 세계화를 추구하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유지 및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 즉, 이제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이라는 혹은 가장 상위에 있는 미술제도라는 환상을 등에 업고 자본과 권력의 틀 속에서 ‘문화 세계화’ 라는 이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Last Exit-Text project’ 의 초점을 현재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들의 의의와 역할에 대한 것으로 맞췄고, 이러한 주제와 부합하는 3개의 질문을 만들어 국내외 미술관계자 11명(비평가, 큐레이터, 미술사가, 작가 등등)에게 보냈다. 그들은 3개의 질문 중에서 1개의 질문을 선택해 답을 보내왔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Q1.이런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현재 비엔날레라는 형식의 대형미술전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비엔날레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묻고 싶다.
Q2.이런 비엔날레의 현상을 고려했을 때, 현재 비엔날레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Q3.현재 비엔날레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비엔날레라는 형식의 대형미술전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비엔날레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묻고 싶다.”
마리오 A. 키로 (Mario A. Caro, 미국)
미술비평가, 큐레이터, Res Artis 대표
언젠가 비엔날레들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현대미술 씬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요건이 되었다. 현대미술이 세계를 파괴하는 세계화를 따르는 가운데, 이러한 주장은 비엔날레들이 주로 지역적 특수성에 초점을 두는 것을 통해 계속해서 예술을 흥미롭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들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지점엔 국수주의적 편견이 있다. 국가가 없는 민족들은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어떻게 그들만의 비엔날레 장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마니 몬테리바노 (Mariano G. Montelibano III (Manny Montelibano),필리핀)
작가, 필리핀 2014 VIVA EXCON 디렉터
비엔날레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언제나 그것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초기에 왜 비엔날레가 개최했을까? 여전히 처음의 개최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가? 비엔날레는 예술 때문에, 그리고 현재의 인간 영혼을 보여주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의 지속성은 애초의 취지를 희석시킬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예술이 이러한 비엔날레의 기반이 되는 한, 비엔날레는 지속되어야 한다.
안토니 문타다스 (Antoni Muntadas, 미국)
미디어 아티스트
베니스비엔날레와 상파울루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특정한 목적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9세기 말에,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 이후 비엔날레들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언제나 문화적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고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도 많은 지역에서 생겨났다. 다른 도시들의 수준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도시들이 문화에 관심이 많은 여행객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수준 높고 인기 많은 문화를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과 경기장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비엔날레든 트리엔날레든 5년마다 열리는 도큐멘타든 이런 정기적 행사들은 실제로 문화적 이유를 위해 개최되기보다는 도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인위적 시간 주기를 더 많이 반영한다. 우리는 문화적 행사를 필요로 하는 시기, 여러 상황 상의 개최 시기, 전시되기에 충분한 작품들의 제작 시기, 재정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기 등에 관해 다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해 3년에서 5년까지 그리고 8년에서 11년까지의 유기적 주기는 언제 어디서든 이런 종류의 문화적 행사를 제작하기 위한 감각을 만들 수 있다.
한스 D. 크리스트 (Hans D. Christ, 독일)
슈튜트가르트 뷔르템베르기세 쿤스트페어라인 (Wurttembergische Kunstverein) 디렉터
비엔날레 시대는 끝났다!
물론, 예술을 위한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는 비엔날레가 개최되는게 나을 것이다!
물론, 도시 마케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물론, 부자들(예술가, 큐레이터, 수집가, 정치가, 재벌들…)은 계급의 전장으로서 자기표상을 위해 비엔날레를 계속 이용할 것이다!
물론, 비엔날레는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엔날레는 아트페어로 쉽게 통합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아젠다는 죽었다! 푸틴의 나라인 러시아에서의 마니페스타, 광주에서의 검열, 인권에 대항하는 시드니 후원자들, 예술지상주의 ( l’ art pour l’ art ) 로 돌아간 베를린……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대신에, 우리는 독립적이며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기관을 위해 투쟁했어야 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성공한 비엔날레로 인해 많은 돈과 지속 가능성을 잃었다.
제임스 엘킨스 (James Elkins (Jim Elkins), 미국)
미술사가, 미술비평가
대부분의 예술은 행동주의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예술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판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예술은 많은 대중에 미치지 않는다. 비엔날레와 아트 페어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압도적 수의 예술품과 비교했을 때 끊임없이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메시지를 지닌다. 비엔날레는 결국 효과적 행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보적 정책들은 이미 좌파적 지식이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급진적 비엔날레는 풍경화와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이다.
라울 자무디오 (Raul Zamudio, 미국)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가, 미술사가
비엔날레는 예술의 상업화에 만병통치약이다. 아트페어가 급증하고 그에 따른 상업화가 번성하는 가운데, 비엔날레는 만연한 금융거래와 사상의 희생과 더 큰 세계와의 약속에 집행유예를 취한다. 그러나 비엔날레는 자체의 진실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 행사를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 예술가들이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더 큰 사회 문화적 영역에 포함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한때 DOCUMENTA는 단독작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안된 바 있었다. 나는 부산비엔날레가 부산의 여러 지역에 걸쳐 조직되어야 하고 학생들이 큐레이터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런 비엔날레의 현상을 고려했을 때 현재 비엔날레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황 두 (Huang Du, 중국)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가
비엔날레는 현대예술의 주된 경향을 보여주는 학술적 무대이다.
비엔날레는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엔날레는 어떤 면에서 문화 생산의 파워게임이다.
비엔날레는 유목적 세계적 문화의 증상을 반영한다.
비엔날레는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맥락 속에서 대화와 협상을 독려한다. 비엔날레는 시각 문화의 텍스트와 기록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
비엔날레는 사회 현실, 기술의 진보, 인간 정신을 반영하는 작업을 책임진다. 비엔날레는 지역의 관객이 예술작품이 특정 문맥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는 창문이 되어야 한다.
비엔날레는 국가, 지역, 도시에 의해 채택되는 문화적 전략의 도구로서 취해질 수 있다.
비엔날레는 예술가의 독립적 사고와 실천을 독려하고 고취시킨다. 비엔날레는 예술가가 문화를 대하는 자세와 그들의 철학적 의미를 지니는 작업에 주목해야 한다.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디렉터, 2014 타이페이 비엔날레 감독
1.비엔날레의 역할은 다른 집단의 전시회가 맡아서 해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은 오늘날의 예술을 읽을 만하게 만드는 사상들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을 모으고, 중요한 도구를 제공하고 새로운 생명 양식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상이나 완곡한 센세이션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2. 비엔날레는 지역마다 다른 홍보적 전략적 경제적 지분을 지닌다.
3. 비엔날레는 주로 2년마다 산출되는 에너지 형태로 구성된다. 건물은 제거될 수 있다. 오직 장소만 남는다.
“현재 비엔날레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현진
미술비평, 전시기획

민주적으로 선출된 김성연 비엔날레 총감독을 내치거나 대통령을 흉본다고 홍성담의작품을내쳐버린지시간이지났건만우리는그의직위를못찾아 주었고 작품은 전시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이슈들은 우리가 말이 되는 사회에 살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문제이다. 그런데 해결을 위한 논의의 초점은 비엔날레의 기여도로 이동해 간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멈추고 사회정의를 이해득실과 맞바꾸는 것은 아닐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지역에 대한 배려가 적었다면 지역 작가의 국제무대 진출에 효과 없었던 현재의 접근 방법을 개선하는 ‘대안 프로그램’ 의 지속적인 개발과 이를 시행할 때 필요한 비엔날레 ‘예산의 일정 비율’ 을 확보할 일이다. 대신에 우리는 사건의 시발점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을까?
현시원
독립큐레이터

비엔날레의 문제점은 과연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거의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관객의 수를 손에 꼽아야 하는 것처럼, 비엔날레의 문제점 또한 생각하다 보면 지치고 지쳐 해결책을 찾는 순간까지 도달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뼈아프게 생각을 덜 하고전체큰그림과작은그림을동시에보는이는드물다.비엔날레는한 도시의 것이거나 도시에 사는 시민의 것이거나 도시에 거주하는 작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비엔날레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안을 차마 밝혀낼 수 없는 이상한 문제들을 만들어낼 때, 문을 열고 작가들의 새롭고 오래된 작업을 연결 지어 사람들의 눈과 발을 모으는 개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안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 개의 대안을 찾는 시작이 될 것 같다.
조나단 왓킨스 (Jonathan Watkins, 영국)
이콘(Ikon) 갤러리 디렉터
비엔날레는 사회사업, 홍보, 예언이 아니라 음악의 조건을 갈망해야 한다. (역주: 월터 페이터(Walter Pater)의 말을 인용한 답변이다. 페이터는 음악이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봤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술은 음악의 조건을 갈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